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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 시 모음 001 -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
안녕하세요. 포레입니다.
오늘은 좋은 시 몇 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.
점
/ 도종환
사람에게는 저마다
자신만 못보는 아름다운 구석 있지요.
뒷덜미의 잔잔한 물결털같은.
귀 뒤에 숨겨진 까만 점같은.
많은 것을 용서하고 돌아서는 뒷모습같은.
여름 숲
/ 박상희
넉넉히 거친 바람 숨겨
초록의 향으로 돌려주렴.
따가운 햇살
몰래 숨어 쉬어가도
모른 채 덮어주렴.
지친 나그네 덥석 주저앉아
세월 보따리 풀어놓거든
초록으로 다독다독 감싸 주렴
야누스
/ 오은
얼음이 녹는 건 슬픈 일
얼음이 녹지 않는 건 무서운 일
어떻게든 살기 위해
남몰래
천천히 녹는다
소울 메이트
/ 이근화
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
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
젖을 줄 알면서
옷을 다 챙겨 입고
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
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
흠뻑 젖을 때까지
흰 장르가 될 때까지
비의 감정을 배운다
단지 이 세계가 좋아서
비의 기억으로 골목이 넘치고
비의 나쁜 기억으로
발이 퉁퉁 붇는다
외투를 입고 구두끈을 고쳐 맨다
우리는 우리가 좋을 세계에서
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
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
골목에 서서 비의 냄새를 훔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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